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셨나요? 저는 방금 홈트레이닝을 하고 왔는데 몸이 뻐근하기는 하지만 개운하네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배우 김지미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배우 김지미] 김지미의 본명은 김명자이고, 출생일은 1940년 7월 15일 (80세) 충청남도 대덕군 북면, 출생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배우 김지미] 김지미의 본관은 알려져 있지 않고, 키는 160cm, 몸무게는 48kg, 가족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배우 김지미] 김지미는 신탄진국민학교 덕성여자중학교 덕성여자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을 나왔고, 종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배우 김지미]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자타공인 당대의 미모 원탑 소리를 듣는 두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그 이후에도 미인 여배우는 많았고 다른 여배우를 압도한다는 얘기를 듣는 여배우도 많지만 당대의 원탑 미모라고 했을 때 거의 반론이 나오지 않는 여배우는 김지미와 정윤희 두 명 뿐입니다.
[배우 김지미] 원래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고 같이 다니는 사이일 뿐이었으나 언론의 오해로 교제 중이라고 보도가 나고, 이에 김지미는 오기가 생겨 정말로 교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13년, MBN 예능 프로그램 "아궁이"에 출연한 연예기자 1호 정홍택 교수에 의하면 김지미는 "내가 나훈아를 만난 것은 잘못인 것 같다"는 후회를 했었다고 전합니다.
[배우 김지미] 정확히 말하면, 나훈아와는 사실혼 관계였으므로 법적 결혼은 총 3번이었습니다. 이혼 역시 3번 했습니다.
[배우 김지미] (결과는 신상옥 최은희 페어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1960년대 후반 부터는 후배 윤정희와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최은희, 엄앵란, 문정숙, 최지희, 김혜정 등 기존에 활동했던 여배우들이 모두가 2진으로 물러났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아 그 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배우 김지미] 한 때 신내림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역시나 사실무근이었습니다. 마지막 영화는 이장호 감독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인데 당시 거액을 들겨 일본-러시아를 오고가며 촬영했지만 흥행이나 평은 대실패였습니다. 이 영화가 워낙 망해서 제작과 배급까지 하던 김지미는 큰 손해를 보았고 결국 지미필름도 이로부터 1년도 안가 문닫아야 했습니다.
[배우 김지미] 1940년 대전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큰 사업체를 운영하여 초등학교 때 뷰익이라는 자가용을 타고 등교할만큼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큰오빠와 큰언니는 각각 서울대 문리대와 음대 출신의 엘리트였다고 합니다. 당시 배우들은 대개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고자 연예계에 입문한 경우가 많았으나 그녀는 예외였습니다.
[배우 김지미] 영화제 주최측에서는 그간 쌓여왔던 신구세대 영화인들간에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고 서로 화합하자는 좋은 취지로 김지미의 회고전을 주최하고, 김지미를 초청했지만, 영화제 측의 이러한 좋은 취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김지미는 귀국하자마자 후배 영화인들을에 대한 근거 없는 일방적인 비방과 인신공격을 하여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자신을 초청해준 영화제 주최측을 당혹시켰고, 결국 김지미의 회고전에는 강수연 등 친분이 있던 일부 후배 여배우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젊은 영화인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그녀만의 축제로 끝나며 젊은 세대의 영화인들, 평론가들로 부터 냉소와 비웃음만 받았습니다.
이 포스팅을 보시고 배우 김지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곧 또 다른 인물을 소개하는 포스팅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남은 하루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