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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지인 프로필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보내셨나요? 저는 오랜만에 산책을 하고 들어와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하네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배우 유지인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배우 유지인] 유지인의 본명은 이윤희(李允熙)이고, 출생일은 1956년 1월 27일 (64세), 경상남도 사천시, 출생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배우 유지인] 유지인의 본관은 알려져 있지 않고, 키는 160cm, 가족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배우 유지인] 유지인은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석사를 나왔고, 종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배우 유지인] 1986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은퇴, 16년만인 2002년 이혼과 동시에 전격 복귀하여 지금도 활동 중입니다. 유지인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동시녹음이 아니라 촬영 이후에 녹음을 하는 후시녹음이 대세였습니다. 그래서 녹음 때 배우 대신 성우를 기용할 수가 있었는데 유지인은 상대적으로 성우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녹음에 활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배우 유지인]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습니다.

[배우 유지인] 정윤희의 경우에는 대부분 성우를 대용했으며, 장미희는 1980년대에도 성우를 대용한 경우가 많았지만, 유지인의 경우에는 79년 영화인 가시를 삼킨 장미에서도 자기의 목소리를 그대로 썼습니다. 유지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릴때부터 워낙 털털한 성격이라 정윤희와 장미희가 트로이카로 한참 치열할 때 본인은 발만 담그고 거기서 좀 물러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배우 유지인]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됩니다.

[배우 유지인] 지금과 다르게 80년대 초반에는 북한사람이 한국의 연예인을 안다는것 자체가 없던시절이었습니다. 또 그 당시 여배우들 중에서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고(정윤희나 장미희만 해도 스캔들이 큰 것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나마 장미희의 경우 그야말로 카더라만 무성하지만 정윤희는 문제의 그 남성과 결혼까지 했고 나중엔 자식까지 두었습니다.) 사생활이 깨끗한 배우였습니다.

[배우 유지인] 근데 결국엔 또한 지성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답게 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TBC 전속 탤런트인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루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배우 유지인]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출생,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데뷔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3년 TBC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지만 정식 데뷔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이후에 하였습니다.당시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하게됩니다.

이 포스팅이 배우 유지인에 대한 정보를 얻으시는 데 도움이 되어드렸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인물을 소개하는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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